1999년 문화재청과 서울대학교가 공동조사한 보고서에서는 한반도에 4만5천910기 남한에 2만9천510기(북한 2만여 기)로 세계적으로 6만여 기 가운데 82.5%의 비중이라고 했으나, 최근 통계로는 남한 3만5천966기로 자세한 내역은 강원도 412기, 경기도 957기, 충북 218기, 충남 743기, 전북 1천969기, 전남 2만2천560기, 경북 3천125기, 경남 1천660기, 제주 105기 등 총 3만5천966기가 발굴되었다. 이들의 모양에 따른 분류로는 i) 탁자모양 고인돌, ii) 바둑판 모양 고인돌, iii) 덮개모양 고인돌, 그리고 vi) 들려 싸기 고인돌 등이 있다.
그런데 달구벌에 있었던 고인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앞선다. 100년 전에도 2천~3천여 기는 넘어섰다. 1973년 7월에 발간된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시사(3권)’ 제2권 제1편 선사시대~삼국시대에서 “고인돌(지석묘) 무더기는 1920년대 초기만 해도 대구읍성 바깥에 분포해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적고 있다. 사실, 당시는 대구역 주변, 달성공원 부근은 물론 도심지역에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신천(新川, 사잇걸), 진천천(辰泉川, 별샘걸), 욱수천(旭水川, 윤슬걸), 율하천(栗下川, 밤거랑) 섶에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해방 전만 해도 달구벌 사람들은 ‘고인돌 천지삐까리’라고 했다. 조국근대화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고인돌의 수난사는 시작되었다. 1996년도 발행된 제2차 ‘대구시사’ 제1권 제1편 선사시대 지석묘(고인돌)에 43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진천천 유역 15기, 욱수천 유역 10기, 율하천 유역 17기 등이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그런데 달구벌에 있었던 고인돌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앞선다. 100년 전에도 2천~3천여 기는 넘어섰다. 1973년 7월에 발간된 경상북도 대구시 ‘대구시사(3권)’ 제2권 제1편 선사시대~삼국시대에서 “고인돌(지석묘) 무더기는 1920년대 초기만 해도 대구읍성 바깥에 분포해서 장관을 이루었다.”고 적고 있다. 사실, 당시는 대구역 주변, 달성공원 부근은 물론 도심지역에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신천(新川, 사잇걸), 진천천(辰泉川, 별샘걸), 욱수천(旭水川, 윤슬걸), 율하천(栗下川, 밤거랑) 섶에 많은 고인돌이 발견되었다.
해방 전만 해도 달구벌 사람들은 ‘고인돌 천지삐까리’라고 했다. 조국근대화와 새마을사업을 하면서 고인돌의 수난사는 시작되었다. 1996년도 발행된 제2차 ‘대구시사’ 제1권 제1편 선사시대 지석묘(고인돌)에 43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진천천 유역 15기, 욱수천 유역 10기, 율하천 유역 17기 등이다.
출처 : 대구신문(https://www.idaeg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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