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通
저 녀석 참 신통한 재주를 가졌군
허, 정말 신통방통한 일이로세
라고 할 때의 ‘신통’ 역시 불교에서 유래한 말이다.
모든 일에 헤아릴 수 없이 신기하게 통달하거나 이상하게 묘한 현상을 가리킬 때 사용하는 용어인 것이다. 원래는 범어인 abhijna의 음역어인데, 선정을 통한 수해으로 얻는 작용을 얻는 용어였다.
즉 걸림이 없고 자유자재한 초인적인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신통에는 태어나면서 지니게 되는 것과 수행을 통해 얻는 것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神通’은 모두 여섯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첫째는
神足通 : 생각하는 곳에 마음대로 가며 마음대로 상을 바꾸는 변화 등의 작용, 분신술, 공간이동.
天眼通 : 세간의 모든 것을 두루 관찰하는 작용
天耳通 : 세간의 모든 소리를 듣는 작용
他心通 : 타인의 마음속 의식을 두루 아는 작용, 讀心術과 비슷한 능력.
宿命通 : 과거세의 생존 상태를 두루 아는 작용, 전생을 볼 수 있는 능력.
漏盡通 : 번뇌를 끊어 두 번 다시 미혹한 세계에 나지 않음을 깨달을 수 있는 작용.
도량
다음은 道場이라는 단어인데, ‘도장’이라고 읽어야 하나, 아니면 ‘도량’이라고 읽어야 하나?
불교에서는 도량이라고 읽는다. 즉 ‘道場’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장소를 말하는 불교 용어였다. 수행의 장소라면 그곳은 어디라도 도량이라고 말한다.
오늘날은 절 전체를 이를 때 도량, 그리고 무예를 닦는 곳은 발음대로 도장이라고 한다.
動鈴
원래 음대로 읽자면 ‘동령’
말 그대로 요령을 흔든다는 의미인데, 스님들이 시주를 얻으려고 돌아다니면서 요령을 흔들었던 것이 아예 걸식의 대명사가 되었고, 그것이 발음마저 바뀌어 동냥으로 굳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동냥은 안 주고 쪽박만 깬다.’라는 속담도 있다.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해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벽창우
우리가 흔히 壁窓戶라고 오해하는 단어.
원래 碧昌牛는 평안북도 碧潼과 昌城 지방에서 주로 키웠던 크고 억센 소를 말하는 단어였다. 사람들의 말을 잘 따르고 고집스러우리만큼 일을 잘하여 예로부터 이 지방에서 키운 소를 최고로 알아주었다고 전해 온다.
그런데 나중에 ‘미련하고 고집이 센 사람을 비유’하면서 이 단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洞察
‘동’이냐 ‘통’이냐의 문제가 되겠다.
우선 이 글자는 ‘골짜기, 동네’ 등을 의미할 때는 ‘동’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꿰뚫다라는 의미로 사용할 때는 ‘통’이라고 읽어야 한다.
그래서 ‘살피다’라는 의미의 ‘察’과 함께 사용하면 ‘통찰’이라고 하는데,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살펴보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가 되는 것이다.
‘洞’이 들어간 단어로 그 옛날 조정에서 관습처럼 사용하는 말을 떠올릴 수 있다.
‘전하, 洞燭하여 주시옵소서.’
여기서 ‘통촉’은 ‘등불을 살핀다’라는 뜻인데, 이렇게 등불을 살피는 것처럼 아랫사람의 형편을 헤아려 살핀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白眼視
납을 업신여기거나 냉대함을 비유한 말.
완적은 예의상의 가르침에는 얽매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푸른 눈동자와 하얀 눈동자를 동시에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속세의 예의에 얽매이는 선비를 보면 하얀 눈동자를 만들어 그를 대했다. 혜강이 술을 들고 거문고를 끼고서 완적을 만나러 가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며 푸른 눈동자를 보여 주었다.
이야기술술한자. 조태성. 2009.
阮籍不拘禮敎, 能爲靑白眼.
완적은 예교에 구애받지 않고 靑眼을 하거나 白眼(흰 눈동자)를 만들 수 있었다.
見俗禮之士, 以白眼對之.
세속 예의에 갇힌 선비를 보면 흰 눈동자로 그들을 대했다.
及嵆喜來, 卽籍爲白眼, 喜不懌而退.
혜희가 찾아오자 곧 완적은 백안을 하니 혜희는 기뻐하지 않고서 물러갔다.
喜弟康聞之, 乃齊酒挾琴造焉,
혜희의 아우 혜강이 그걸 듣고 곧 술을 마련하고 거문고를 끼고 찾아오니,
籍大悅, 乃見靑眼.
완적이 크게 기뻐하며 곧 청안을 드러냈다.
由是禮法之士疾之若讐.
이 때문에 예법에 갇힌 선비들은 그를 미워하길 원수처럼 하게 됐다.
인용https://leeza.tistory.com/19445
참조https://sgsg.hankyung.com/article/2020120431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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